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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순위 8년의 동행 책소개

람보디아K 2017. 7. 8. 22:31


책순위 8년의 동행 책소개입니다. 굉장히 소설같기만한 경험담을 담은 이야기였습니다. 렙이라고하는 미치앨봄의 어린시절에 만났던 랍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치앨봄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로 국내에서도 아주 큰 인기를 얻었던 사람입니다. 이번 작품역시 과거의 이야기들을 마치 수필처럼 잔잔하게 적어나갑니다. 인간애에 대한 깊은 고찰이 은은히 묻어 있는 이야기로 아래에 관련된 한 단원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약간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어떠한 이야길르 담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평화의 집 :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가운데 나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렙과 두 번째로 만나는 날이었다. 이번에는 예배당에서 뵙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죽은 뒤에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가 일하는 모습도 알아야 하니까. 골목골목 어린 시절 기억이 묻어 있는 동네를 지나가자니 기분이 묘했다. 예전에 이곳은 평범한 중산층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아버지들은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어머니들은 집 안에서 요리를 하며 이따금 교회 종소리가 울리는, 그런 동네 말이다. 나는 커 가면서 하루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11학년 이후 고등학교를 떠난 나는 보스던 근처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으며 유럽에 갔다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어린 시절 이후로는 고향에 산 적이 없었다. 내가 가진 꿈과 목표에 비하면 그곳은 너무 좁아 보였다. 마치 이제는 더 이상 맞지 않는데도 내 몸을 옥죄고 있는 초등학교 교복처럼. 나는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외국 친구들을 사귀는 나를 꿈꿨다. 언젠가 들었던 ‘재계 시민’이라는 말.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마흔 줄에 들어선 내가 다시 고향에 와 있었다. 차를 몰고 지나가다가 식료품점 유리창에 붙은 ‘얼음과자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봤다. 얼음과자. 어렸을 때 정말로 좋아하던 군것질거리였다. 체리 맛이나 레몬 맛이었고 작은 것은 10센트. 큰 것은 25센트였다.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그 일음과자를 먹어 본 적이 없다. 어떤 남자가 겁 하나 가득 담긴 얼음과자를 

핥으면서 가게에서 나왔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곳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았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얼음 과자를 핥아 먹고 있었다면 내 인생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나는 얼른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나는 추도사라는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그곳에 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살고 있던 집으로 돌아갈 터였다. 주차장은 거의 비어 있었다. 나는 높은 유리 아치를 지나 회당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특별한 향수(鄕憖)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곳은 내가 어릴 적에 보던 예배당이 아니었다. 도시 근교의 다른 많은 교회나 회당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의 템플 베스 숄름(TempIe Beth Sholom. ‘평화의 삶’이란 뜻이다) 역시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처음에 있던 곳에서 다른 자리로 옮겼고, 세월이 지날수록 부유한 신도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면서 규모도 커졌다. 옛날에 나는 교회란 자신만의 독특한 모양을 지키며 언제까지고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작은 산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신도들에 따라 교회도 변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교회를 짓고, 다시 개축한다. 우리 회당도 아담한 빅토리아식 건물에서 웅장한 건축물로 탈바꿈했다. 넓은 로비와 많은 성서 공부방이 갖춰져 있었고 벽에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어릴 때 다니던 조그만 벽돌 건물이 더 좋았다. 그대는 뒷문으로 들어서면 회당 주방에서 홀러나오는 음식 냄새가 코를 간질이곤 했다. 나는 우리 교회의 구석구석을 내 손바닥처럼 훤히 알고 있었다. 친구 녀석들이 숨곤했던 청소 도구실까지도, 렙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거기에 숨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얼마다 있던가? 램은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칼라라 달린 셔츠와 캐주얼한 재킷 차림이었다. 그는 '헬로 돌리 (Hello Dolly.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원이)'를 각색해 부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헬로 미첼, 헬로 미첼, 원래 자리로 돌아와서- 반가워요-”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만의 뮤지컬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냐는 내 질문에 그는 가끔 머리가 이지러운 것 말고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나는 현기증이 심하시냐고 물었다. 렙은 그냥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이렇게 대답하지.” 그는 또 말에 선율을 실었다. “늙은 랍비 예전의 랍비가 아니라네.” 내가 끝을 마무리했다. 예전의 립비가 아니라네. 내가 끝을 마무리했다. 말허리를 자른 게 조금 미안해졌다 난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을까? 우리는 복도를 걸어 그의 방으로 향했다. 이미 은퇴한 렙은 공식적인 스케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시간을 쓰고 있었다. 굳이 회당에 나오지 않고 집에 있어도 아무도 뭐랄 사람 또한 없었다. 하지만 종교란 모름지기 정기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법이었고. 그는 의식을 지키듯 자기 나름대로 정한시간에 회당에 나오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이곳을 1948년에 수십 개 가정만이 다니던 작은 회당에서 1,000가구 이상의 신도를 거느린 회당으로 키웠다. 나는 그가 원하는 것에 비해서 너무 회당의 몸집이 기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가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신도들도 너무 많았다 또 예배를 집전하거나 일상적인 책무를 돌보는 다른 랍비들-주임랍비 한 명. 부(副)랍비 한 명-도 있었다. 렙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부랍비라는 개념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는 예배당의 모든 열쇠를 갖고 다니면서 직접 문단속을 하곤 했다. 

“저것 보게.” 그는 어떤 방의 문간에 쌓여 있는 선물 상자들을 가리켰다 저게 뭡니까? 내가 물었다. 

“저 방은 신부 대기실이야. 결혼식을 하기 전에 저기서 옷을 갈아입지.” 그는 선물들을 눈으로 훑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름답지 않은가?”

네? 

“인생 말이야.” 


1967년 :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다. 눈이 내리고 난 어느 날 아침, 나와 친구 녀석이 모자 달린 점퍼와 고무 부츠 자림으로 함께 학교에 가는 중이다. 작은 집 앞의 잔디밭에 예수 그리스도 탄생 장면이 실물 크기의 인형들로 꾸며져 있다 우리는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동방박사들, 동물들도 보인다. 저 사람이 예수님이야? 내가 묻는다. 

“어떤 거?” 왕관 같은 거 쓰고 서 있는 사람 말이야 

“그건 예수님 아빠 같은데.” 그럼 그 옆에 있는 사람? 

“갓난아기가 예수님이야” 어디? 

“저기 구유에, 바보야” 우리는 목을 길게 빼 본다. 하지만 우리가 선 곳에서는 예수가 보이지 않는다.

“난 꼭 볼 거야.” 친구 녀석이 말한다. 그러지 않는 게 좋아. 

“왜?” 그러면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까. 나도 왜 그렇게 말하는지 잘 모른다. 다만, 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우리와 저들'로 나뉘어 있다는 걸 느낄 뿐이다. 우리는 유대인이고, 유대인이라면 예수에 대해서 말해서도, 예수를 쳐다봐서도 안 된다. 

“그래도 볼 거야.” 친구가 말한다. 나는 소심하게 친구의 뒤를 따라 잔디로 들어간다. 발밑에서 눈이 뽀드득거린다. 가까이서 보니 동방박사 세 명의 모형이 가짜 티가 많이 난다. 석고에 피부를 살구색으로 색칠한 모형이다.

“저게 예수야.” 친구가 말한다. 나는 친구의 어깨 너머로 쳐다본다. 지푸라기가 깔린 작은 구유 안에 아기 예수가 누워 있다 나는 몸이 떨린다. 예수님이 당장이라도 눈을 반짝 뜨고 “이 녀석, 들켰지!” 할 것만 같다. 이러다 지각하겠어. 내가 뒤로 물러서며 말한다. 친구가 코웃음을 친다. 

“겁쟁이 자식.”

헨리의 삶 :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인 헨리는 열두 살 때 처음으로 성령을 영접했다. 어느 금요일 밤. 할렘에 있는 ‘진정한 구원 교회’에서있다. 그날은 예수님의 부름에 응함으로써 거룩한 성령과 힘을 부여받는. 성령 영접 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전통에 따라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했다. 헨리는 사람들을 따라 설교단 쪽으로 올라갔다. 헨리 차례가 되자 그의 몸에 올리브기름이 발렸고. 그는 신문지가 깔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예수님을 부르십시오.” 사람들이 말했다. 헨리는 그대로 했다 그는 예수님을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다. 몇 분 동안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예수님을 수없이 반복해서 부르다 보니 무릎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주님을 부르십시오!” 신도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부르세요! 부르세요!”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그분께서 오십니다! 지금 부르세요!” 헨리는 머리를 앞뒤로 쉼 없이 움직였다. 다리가 저려 오고 아팠다.

“예수님, 예수님, 예수금, 예수님. 예수님...”

“거의 다 됐어요! 조금만 더!” 

“주님을 부르세요, 주님을!”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15분. 아니 20분쯤 지난 것 같았다. 예수님이란 단어가 뒤엉키고 뒤엉켜 이제는 '예수님'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외침과 중얼거림과 신음소리가 뒤섞여 튀어나왔고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렸다. 목소리와 혀와 이빨과 입술이 한데 섞인 기계가 되어 전율하면서 격앙된 소리로 단어를 뱉어 냈다. 

“예수님예수예수예수님예에에수-예수수예수님••••••!” 

“됐습니다! 드디어 성령이 오셨습니다!” 

헨리는 성령을 영접했다. 또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는 숨을 그게 내쉬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대로 질식하는 줄만 알았다. 그는 다시 그게 심호흡을 하면서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턱에 흐른 침을 닦았다. 누군가가 헨리가 깔고 있던 젖은 신문지를 둥글게 뭉쳐서 치웠다. 

“기분이 어때요?” 목사님이 물었다. 

“좋아요.” 헨리가 작게 헐떡이며 대답했다. 

“성령을 영접하고 다니 기분이 좋은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랬다. 헨리는 기분이 좋았다. 방금 무엇을 한 것인지 자신도 정확히 몰랐지만. 그러나 목사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헨리를 지켜달라고 주님께 기도했다. 그것은 헨리도 바라는 바였다. 자신을 지켜 달라는 기도. 그 기도 덕분에 핸리는 집으로 돌아갔을 때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밥 그렇게 헨리는 성령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다른 것들도 받아들였다. 그는 담비를 피우기 시작했다. 술도 마셨다. 여학생과 심하게 싸우고 문제를 일으켜 6학년 때 학교에서 쫓겨났고. 마리화나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헨리는 ‘자식들 중에서 헨리가 가상 마음씨가 곱고 착하다’고 엄마가 친척에게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엄마는 헨리가 언젠가는 목사님이 될 거라고 믿었다. 헨리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목사라고? 내가 마리화나를 얼마나 많이 피우는데?’

믿음이 함께하는 일상 : 회당에 있는 렙의 방은 그의 자택 서재와 그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서류와 자료와 편지들, 추억이 담긴 물건들로 어지러웠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역시 그의 유머 감각이 엿보였다. 방문에는 축복이 담긴 문구와 재미난 포스터들. 그리고 ‘내 공간을 침범하면 당신 얼굴에 한방 먹이겠음’ 라고 적한 표지판까지 붙어 있었다. 자리에 앉은 다음 나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첫 질문은 간단한 것으로. 제대로 된 추도사를 쓰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었다. 랍비님은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셨습니까?

“일이라고?” 네. 성직자 일이요. 신의 특별한 부르심을 들으셨나요? 

“그렇다고 보긴 힘들겠군.” 신비로운 환영을 보진 않으셨나요? 아니면 꿈은?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형태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았나요?

“자넨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것 같아.”

글쎄요. 성경이라면 좀 읽었죠. 그는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았어.” 

 무례하게 굴 생각은 결코 없었다. 나는 예전부터 랍비나 신부. 목사 같은 성직자들을 항상 존경해 왔다. 나는 그들이 속세와 천상의 중간에 있는 세계에 사는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저 드높은 곳에는 하나님이, 이곳 지상에는 우리 인간이. 그리고 그 사이에는 그분들이 있는 것이라고. 렙도 당연히 그런 존재였다. 적어도 내가 어린 시절에 보던 렙은 그랬다. 그에게는 거인 같은 카와 뛰어난 평판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설교다. 열정과 유머와 위엄과 감동적인 속삭임이 담긴 앨버트 루이스의 설교는 최고의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 또는 파바로티의 아리아와도 같았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예배당을 찾았다. 우리 모두가 그걸 알았고. 아마 그 자신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예배당에나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신도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회당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행여나 랍비의 설교 시간에 늦을까 봐 손목시계를 흘긋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 그의 설교 방식이 전통적 설교들과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들에 박한 전통적인 스타일의 설교-A라는 이야기에서 시작하 B라는 이야기로 넘어가고. 그것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방식-를 배웠지만. 두세 번쯤 시도해 본 뒤에 포기해 버렸다. 신도들은 딴생각을 하거나 지루해했고. 그것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래서 앨버트 루이스는 자신만의 방식을 개발했다. 창세기1장 말씀으로 시작해 그 내용을 간단하고 쉬운 개념들로 쪼개 서 들려준 다음, 그것을 일상생활과 연결하여 이야기해 주는 것이 그것이었다. 또 신도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로부터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운 설교 스타일이 탄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설교는 열정적인 공연과 흡사해져 갔다. 그는 마술사 같은 손짓을 섞어서 말했고 중요한 대목에 이르면 목소리 톤을 점점 높였으며. 성경 구절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와 뮤지컬 스다일의 농담. 또는 이디시에히브리어, 아람어와 함께 유대 역사상 가장 중요한 3대 언어-옮긴이) 표현을 섞어 가며 설교했다. 때때로 '손들고 말씀해 보실 분 계세요?” 하며 신도들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가 설교의 소재로 삼을 수 없는 것은 없었다. 어떤 설교 때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서 닥터 수스(Dr. Seuss. 미국의 유명한 아동 그림책 작가-옮긴이)의 ‘거북이 여틀(Yertle the Turtleb)’을 읽었고. 또 어떤 설교 때는 메리 홉킨(Mary Hopkin)의 그 시절이 좋았지('Ibose were Days)'를 불렀다 어떤 날은 호박과 나무 장작을 갖고 와서 그것들을 칼로 내리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자란 것보다 할리 자란 것이 더 깨지기 쉽 

다는 교훈을 전달했다. 그는 「뉴스위그」나 「다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스누피 만화. 세익스피어의 작품. TV 시리즈 <ÜN(Matlock)>에 나오는 구절들을 인용했다. 그는 팝송, 포크송, 오래된 옛날 노래들을 영어. 히브리에 이탈리아어로. 때로는 아일랜드 억양을 흉내 내며 불렀다 나는 그 어떤 책들보다도 립의 설교를 통해서 말이 가진 힙에 대해 배웠다. 설교 도중에 안을 들러보면 어느 누구 하나 딴전 피우지 않고 모두 랩에게 집중하고 흉내 내며 불렀다. 나는 그 어떤 책들보다도 립의 설교를 통해서 말이 가진 힘에 대해 배웠다. 설교 도중에 예배당 안을 둘러보면 어느 누구 하나 딴전 피우지 않고 모두 립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신도들을 꾸짖거나 나무라고 있을 때도.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잔뜩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은 설교가 끝나면 그제야 그게 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협의 설교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신으로부터 어떤 거룩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닌지 궁금했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고,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다가오셨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름대로의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 신념이나 관점은 많이 다르지만 이 책에 담겨있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주고자하는 따뜻한 메시지는 그래도 잘 전달이 된 것 같습니다. 실화임에도 마치 동화 같기만 한 글, 이 책을 읽으시고 나면 아마 한동안은 멍한 상태가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평범함, 언제나와 같은 오늘이야말로 얼마나 큰 행복이고 얼마나 큰 가치를 갖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 같던 순간들도 그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나의 하루가 되고 우리의 인생이 됩니다. 우리 인생의 새로운 발견, 책순위 8년의 동행 책소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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